원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멸망 후 발해에 편입되고, 이어 거란의 근거지가 되었다.
993년(고려 성종 12) 거란의 제1차침입 때 서희(徐熙)의 외교로 고려 영토로 수복되어 강동6주(江東六州)의 하나인 흥화진(興化鎭)이 설치되었으며, 용만현(龍灣縣) 또는 화의(和義)라고 불렸다.
거란의 4차에 걸친 침입이 실패로 끝난 뒤 고려는 방비를 굳건히 하기 위해 1032년(덕종 1) 지금의 신의주 부근에 8성을 쌓았고,
1033년에 압록강 입구를 기점으로 이 지역을 거쳐 동해안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거란도 현종 초에 압록강 동쪽에 보주(保州)라는 성을 두었고, 문종 때 궁구문(弓口門)을 세우고 포주(抱州, 일명 把州)라 칭하였다. 1117년(예종 12) 금(金)나라가 일어나 거란을 정벌하자, 고려는 내원성(來遠城)과 포주까지 수복해 압록강 이남의 이 지역은 완전히 우리의 영토가 되었다.
이에 의주방어사(義州防禦使)를 두고, 남계(南界)의 인호(人戶)를 데려다 채웠으며, 압록강을 경계로 관방(關防)을 두었다. 1221년(고종 8)에 반역사건〔義州賊의 亂〕이 일어나 격을 낮추어서 함신(咸新)이라 일컫다가 곧 회복시켰다.
1269년(원종 10)에 서북면병마사 영기관(西北面兵馬使營記官) 최탄(崔坦) 등이 60여 성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한 까닭에 원나라의 동녕부(東寧府)에 속했다가 1290년(충렬왕 16)에 복구되었다.
1366년(공민왕 15)에는 목(牧)으로 승격했으며, 1369년 만호부(萬戶府)를 두어 좌정(左精)·우정(右精)·충신(忠信)·의용(義勇)의 4군(軍)을 설치하고, 각각 상천호(上千戶)·부천호(副千戶)를 두어 관장하게 하였다. 1388년(우왕 14)에 이성계(李成桂)가 이곳 위화도에서 회군한 것을 기념하는 사당(祠堂)이 남아 있다.
1402년(조선 태종 2)에 비로소 판관(判官)을 두고, 정주(靜州) 및 위원진(威遠鎭)을 합했고, 1432년(세종 14) 4월에 토관(土官, 토착민에게 주던 관직)을 설치하였다. 세조 때 진(鎭)을 두어 북방수비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로 삼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에 피난함으로써 환도 후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 지방관제가 부군제(府郡制)로 바뀌어 의주는 23부 중의 1부가 되었고, 1896년 지방제도 개편 때 평안북도 의주군이 되었다.
1907년에 도관찰부(道觀察府)가 영변으로부터 의주로 옮겨졌다. 1921년에는 도청이 신의주로 이전되었고, 1931년 의주면이 의주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4년 5월 청수동이 삭주군으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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