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초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수동현(壽同縣)
또는 이동혜현(爾同兮縣)이라 하였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개칭,
성산군(星山郡, 星州)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초에 인동현으로 개칭되고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星州))의 속현(屬縣)으로
병합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약목현(若木縣)이 편입되고 감무(監務)를 둠으로써 독립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인동현으로
유지되었다. 1604년(선조 37) 인동부(仁同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인동의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1604년(선조 37) 4월 찰리사(察理使) 곽재우(郭再祐)에 의하여 천생산성(天生山城)의 외성(外城)이 축조된 후, 관방(關防)의
요새(要塞)로 부각되었다. 1605년(선조 38) 7월 도원수(都元帥) 한준겸(韓浚謙)의 계청(啓請)에 의하여 도호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도호부사는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도호부(都護府)에서 대구부 인동군(郡: 四等郡)이 되었다. 1896년 경상북도 인동군이 되었다.
1914년 3월
군면 폐합 때 인동군(仁同郡) 관할의 9개면(인동면(읍내면), 북면, 동면, 장곡면, 문량면,
석적면, 북삼면, 약목면, 기산면)이 칠곡군(漆谷郡)에 병합(倂合)되었다.
1977년 3월
인동면은 경상북도
구미지역출장소의 행정관할로 되었다. 1978년 2월 구미시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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