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 시대에는 진내군(進乃郡) 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라 부르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 진례(進禮) 또는 진예
983년(고려 정종 2) 진례현(進禮縣)이라 하여 강남도(江南道)에 속하였다.
1012년(현종 3) 금계군(錦溪郡)으로 승격 1018년(현종 9) 전라도에 예속하였다. 1173년(명종 3) 금계군을 분할하여 부리현(富利縣)·무풍현(茂豊縣)을 설치하였다.
1305년(충렬왕 31) 다시 부리현(富利縣), 청거현(淸渠縣), 무풍현(茂豊縣), 진동현(珍同縣)을
폐합하여 금주군(錦州郡)으로 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다시
고산현(高山縣)의 속현이었다. 1393년(조선(朝鮮) 태조 2) 만인산(萬刃山:胎峰)에 태조의 태(胎)를 모신 후 진주군(珍州郡)으로 승격하고 지진주사(知珍州事)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1413년(태종 13) 금주군(錦州郡)을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 1896년(고종 33) 13도 실시에 따라 충청남도(忠淸湳道) 공주부(公州府)의 금산군과
진산군을 전라북도로 편입되었다.
1914년 부, 폐합으로 진산군(珍山郡)을 병합하여 현재의 금산군(錦山郡)이라
칭하였다.(금산면(錦山面), 금성면(錦城面), 제원면(濟源面), 부리면(富利面), 군북면(郡北面), 남일면(南一面),
남이면(南二面), 진산면(珍山面), 복수면(福壽面), 추부면(秋富面)의 10개면(面)으로 하였다)
1940년 금산면(錦山面)이 금산읍(錦山邑)으로 승격 (1읍 9면)
1953년 내부리(內釜里)에 있는
군북면 사무소(郡北面事務所)를 현재의 위치인 두두리(杜斗里)로 신축이전 하였다. 1962년 군북면
내부출장소(郡北面內釜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 1973년 복수면(福壽面) 용지리(龍池里)가
추부면(秋富面)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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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읍 [ 금산읍 ] 9면
[ 금성면, 제원면, 부리면, 군북면, 남일면, 남이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