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지역에 속해 있었다[마한(馬韓)54국(國) 중(中)
불운국(不雲國].
백제(百濟)의 근초고왕 때 백제에 병합되어 군의 명칭을 복홀군(伏忽郡) 이라 불렀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6)이 군현의 명칭을 모두 중국식으로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보성군(寶城郡)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高麗) 태조 (太祖)는 삼양군(三陽郡)이라 하였다.
996년(성종 15)에 패주(貝州)로 개칭하였고, 이때 별호로서 산양이라부르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행정제도를 개편하면서,
다시 보성군(寶城郡)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지사군으로 7개의 속현을 둔 웅군이 되었다.
1395년(조선
태조 4)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흥양현(고흥)의 치소를 보성군의 속현인 조양현(현 조성면)으로 옮겨 조양이 일시적으로 고흥에 속하게 되었다.
1409년(태종
9) 본군에 속해있던 남양·태강·도화·풍안의 4현이 흥양의 관할에 놓여지고, 조양현은 본군에 환속되었다.
1430년(세종
12) 한때 장흥도호부의 관할에 놓여 있다가 얼마있지 않아 순천도호부에 속하게 되었다. 1441년(세종 23) 조양현(兆陽縣)과 복성현(福城縣)을 제외한 대부분의 속현이 흥양현으로 이속되어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羅州部)
관할이었다 1896년 8월 광주부(光州部) 관할에 놓이게 되었다.
1896년 전라남도(全羅南道) 보성군(寶城郡)이 되었다 1908년(순종 2) 낙안군이 폐지되고, 낙안군의
11개면 가운데 남사, 남하, 고상, 고하의 4개면이 고상면과 남면으로 합해져 본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대규모의
행정구역개편이 이뤄지면서, - 장흥군의 장동면 마흘, 율리의 일부와 부평면 금동리 일부 - 순천군 동상면의 세곡리일부, 동하면의
봉림리 일부, - 고흥군 대서면의 남당리 일부와 동면의 하송리 일부가 본군에 편입되었다. - 본군의 용문면과 옥암면을 합하여
보성면으로, - 겸어면과 백야면을 합해 겸백면으로, - 문전면과 봉덕면을 합해 문덕면으로, - 도촌면과 송곡면을 합해
득량면으로, - 조내면과 대곡면을 합해 조성면으로 개편하였다. - 장흥군의 회령면과 천포면을 편입하여 회천면으로개편하였으며,
웅치면을 본군에 편입하였다. 1915년 고상면과 남면을 합하여 벌교면을 신설하였다.
1929년 순천군
동초면의 연산, 봉림, 회정, 장양, 호동의 5개리를 벌교면(筏橋面)에 편입하였다. 1937년 벌교면(筏橋面)을 벌교읍(筏橋邑)으로 승격 시켰다.
1941년 10월 보성면(寶城面)이 보성읍(寶城邑)으로 승격하다.
1973년 7월 1일
본군 문덕면 한천리가 승주군 송도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고흥군 동강면 장도리와 그 해역이 벌교읍(筏橋邑)에 편입되었다.
1984년에 기공하고 1991년에 완공된 주암 다목적댐 공사로 인해, 본군 문덕면의 8개리, 복내면이 7개리, 율어면의 2개리
일부 지역들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으며, 1998년 현재의 행정구역은 2읍10면126개의 법정리(행정리 314)와 593개소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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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읍 [ 보성읍, 벌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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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 노동면, 미력면, 겸백면, 율어면, 복내면, 문덕면,
조성면, 득량면, 회천면, 웅치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