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관정(書雲觀正) 조의(趙誼)의 아들이며, 조용(趙庸)의
문인이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 감찰(監擦)·정언(正言)·헌납(獻納)
등을 거쳐 1403년(태종 3)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태종
7) 문과증시(文科重試)에 급제하고,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이 되었다. 다음해 장령을 거쳐,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8년(태종
18) 이조참판이 되었다가
이해 형조판서에 승진, 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태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항상 측근에 있었고, 세종이 즉위하자 주문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33년(세종 15) 함길도 도관찰사 겸 함흥부윤으로 부임하여
우디거가 침입하자 이를 막아 싸웠다. 1435년(세종
17) 판중추부사가 되고,
1437년(세종 19) 예문관 대제학을 겸임했으며, 다음해 경상·전라·충청 등 3도의
도순문사로서 축성을 감독했다. 1439년(세종 21)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442년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으며, 1446년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다음해인
78세에 죽었다
글씨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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