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진린(璘, 자는 조작, 호는 용애)은 중국의 대성으로
광동지방에서
대대로 진현유와 진현관을 배출한 명문의 후손으로 1597년(선조
30) 왜적이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이 위태롭게 되자 명나라에서 다시 원군을 보내어 왜적을
격퇴했는데 이 때 진린(璘)이 어왜도총관 전군도독부 도독으로서
수병 5천을 거느리고 그해 12월 20일 강진 고금도에 도착, 이순신(李舜臣)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7월 16일 한산도로 진을 옮겨 전공
세워 무명을 떨쳤고, 이듬해 귀국하여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졌으며, 1602년
세상을 뜨자 태자소보에 추증하고 시호를 충강(忠康)이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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