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김씨 (東萊 金氏) |
시조(始祖) : 김흥도(金興濤) |
시조 김흥도(興濤)는 조선 중종 때
동래부사로 재직중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禍)를 입고 안변지방에 이사하여
숨어 살았다.
후손들이 그가 재임하였던 동래(東萊)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
다른 문헌... 시조는 김흥수(興壽)로 조선 명종 때 동래부사를 지내던 중 을묘사화로 화를 입어 안변(安邊)으로 유배되었다. 그뒤 후손들이 시조가 재임했던 동래를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왔다.
|
|
[ 분파(分派), 계파(系派) ]
|
|
[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김덕린(德麟)
: 중추부사를 역임했다. 김세진(世珍) : 부호군을
지냈다. 김수함(守咸) : 1755년(영조 31)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을 역임하였다. |
|
[ 상계 세계도(上系世系圖) ]
|
|
[ 집성촌(集姓村) ] 함남 안변군 환곡면 하율리,
상율리, 하남리 함남 안변군 배화면 용연리, 낙천리 |
|
[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부산
동래(東萊) |
|
[ 항렬표(行列表) ]
10세 |
11세 |
12세 |
13세 |
14세 |
15세 |
16세 |
17세 |
종(宗) |
언(彦) |
안(安) |
봉(鳳) |
성(性) |
종(鍾) |
한(翰) 철(澈) |
집(集) 채(采) |
|
|
[ 인구(人口) ]
1,555명. (1985년) 897명. (2000년 통계청) |
|
[ 관련 사이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