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의숙을 졸업한후 동래에 구명학교, 의령에
의신학교를 창설했다. 1909년 서상일(徐相日), 신성모(申性模),
박중화(朴重華) 등과 대동청년당을 조직,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남북 만주, 시베리아 등지의 독립군 기지를 돌아보고 귀국하여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경영하면서 그 곳을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의 연락처로
삼았다. 1933년 만주로 망명, 동경성에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건립,
교포의 생활안정과 후진 교육에 힘썼다. 한편 대종교에 입교하여
총본사 전강, 교적 간행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42년 왜경에 피체, 9개월
만에 병보석되었으나 이듬해 병사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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