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야임씨세보"에 의하면 임윤손(允遜)을 1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을 옥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고 한다.
그의 아들 중로(重老)가 고려 때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증손 춘무(春茂)가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현손 천수(千壽)가 장사랑(將仕郞)을 역임하였다.
다른 문헌에서는... . 시조는 임돈. 조양(兆陽)임씨 시조
임세미(林世味)의 후손이라고 한다. 문헌이 전해오지 않아 시조의 사적이나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옥야임씨세보"에 의하면 옥야임씨가 고려 때에 옥야에 관향을 정하고 고려말에 송도로 이주,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그동안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5세조 장사랑공(將仕郎公)과 임천수(林千壽), 그리고 6세조 지평공(持平公)은 효행과 우애에 뛰어나 나라로부터
정려(旌閭)와 증직(贈職)을 받았고 12세조 향천공(香泉公) 임경한(林景翰)은 필법이 뛰어나 입신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1세조 임윤손(林允遜)
이전의 부분은 누차의 전란으로 소실되어 정확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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