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초기에는 칠파화협(漆巴火縣)이라 하였다.
경덕왕 때 진보현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진안현(鎭安縣, 고구려의 助攬縣)과 합쳐 보성부(輔成府,
載岩城)로
개편하였다. 고려 현종 때 예주(禮州)에 편입시켰는데 왜구로 인해 그 지방을 비워
두었다. 조선 태조 때 진보현(縣)을 설치하였다. 세종(世宗) 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혁파(革罷)하고 진보로 고쳐 진보현(縣)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했다. 1478년(성종 6) 다시 복귀하여 진호현이 되었다. 1894년(고종 32) 진보군(眞寶郡)이 되었다. 1914년 군을 폐하고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 지역은 진보면(眞寶面)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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