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에는 마한이 위치.
백제시대에는 열야산현(烈也山縣), 진악산현(珍惡山縣)을 포함했던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과 가지내현(加知柰縣)을 포함했던
덕근군(德近郡)의 2개군에 속하였다.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백제의 계백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대가 황산벌을 중심으로 백제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이다.]
신라시대 황등야산군을 황산군으로 고쳐 덕은군(德殷郡), 황산군(黃山郡) 2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열야산현은
니산현(尼山縣)으로, 진악산현은 석산현(石山縣)으로, 가지내현은 시진현(市津縣)으로 개칭되었다. 원래 은진은 백제의 덕근군으로, 신라 경덕왕 때
덕은(德殷)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이르러서는 황산을 연산으로, 덕은(德殷)을 덕은(德恩)으로, 석산(石山)은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는 예산·은진·노성이 시진현과 함께
공주에 속했다.
1397년(조선 태조 6)에 덕은·시진을 합쳐 덕진(德津)으로 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연산군(連山郡)을 연산현(連山縣)으로
변경.
1419년(세종 1)에는 덕은군을 은진현으로 개칭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니산현과 석성현은 계속 유지해 오다가 영조 때 니산(尼山)을 니성(尼城)으로, 정조 때 노성현(魯城縣)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12년 연산, 은진, 노성, 석성의 4현을
4군으로 변경하였다. 1914년 3월 연산·은진·노성·석성군 4군을 병합하여 논산군(論山郡)을 설치(15면) 1931년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1읍14면). 1938년
논산면이 논산읍으로 승격(2읍13면)
1963년 구자곡면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을 합병하여 연무읍으로 승격(3읍12면)
1989년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두마면에 편입 1990년 두마면에 충청남도 계룡출장소 설치 1996년 논산시(論山市)
승격과 함께 논산읍이 취암동과 부창동으로 분리(2읍 12면 2동) 2003년
논산시(論山市)에서
충청남도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로 분리(2읍 11면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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