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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정보 | 진보조씨 (眞寶趙氏) - 시조(始祖) : 조용(趙庸) :+: www.Surname.iNFO = www.Surname.KR
진보
조씨 (眞寶 趙氏) |
시조(始祖) : 조용(趙庸) |
시조 조용(庸, 시호 文貞)은 배천조씨(白川
趙氏)
시조 조지린(之遴)의 11세손이다.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 전교주부 삼사도사 계림부 판관 사헌지평 성균사예
예조총랑 등을 역임하고 조선 개국 후 태조 말에 간의대부가 되고, 이어
경연시독관을 거쳐 형조전서에 올랐다가 파직되었다. 태종 때 성균관
생원 2백여 명이 그를 기용하여 스승으로 모시게 해 달라는 상소를 하여
검교 한성부윤 겸 대사성에 특임, 이어 예문관 대제학으로 대사성 세자우빈객을
겸임했다.
본관은 사기에 조용(庸)의 본관이 진보(眞寶)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용의선대에 이비 진보로 분관한 듯이 보이나 '진보조씨세보(眞寶趙氏世譜)'에는
용이 말년에 퇴관한 후 진보(眞寶)로 이봉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진보(眞寶)로 본관을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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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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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조이(耳)
: 시조 조용의 아들, 문과에 급제하여 북평사를 지냈다. 조청(聽)
: 시조 조용의 손자,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조선(善) : 시조의 5대손, 죽산부사를 지냈다.
조립(砬) : 18세손, 병자호란 때 병든 어머니를 업고 산중으로 피난하다가
호군에게 발각되자 그의 어머니를 가로막고 <나를 대신 죽여달라>고
애걸하여 어머니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고향에 효자 정문이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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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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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중복리 충남 천원군 입장면 가산리, 용정리 충북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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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진보(眞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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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식(植) |
희(熙) |
규(圭) |
현(鉉) |
구(求) |
상(相) |
병(炳) |
균(均) |
호(鎬) |
한(漢) |
3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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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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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365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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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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